[성명]해방의 땅, 생태공화국 통문(通文) (2023.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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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땅, 생태공화국 통문(通文)


  우리는 지구의 깊고 오랜 숨을 타고 났다. 우리는 매일 그 숨을 들이마시고 또 내쉰다. 숨 없이는 삶도 없고, 삶 없이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숨은 우리의 모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숨탄것*들이다.

*: ‘생명을 지닌 동물’을 일컫는 순우리말

  나와 우리의 안녕은 지구 생태계의 안녕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우리는 물과 공기와 땅,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과 연결된 지구 생태계의 일부이다. 우리의 생활, 관계, 행동을 규율하는 법 질서 또한 지구의 유한하고 순환하는 질서에 부합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생태적 존재다. 우리는 지구의 한 부분이고, 지구 또한 우리의 일부다. 지구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뿌리 내리는 유일한 터전이다. 우리는 독립된 개체로서는 구조적 변혁과 해방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고유하고 다양한 생명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 상호 의존적인 지구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은 인간-인간 간의 관계, 비인간-인간 간의 관계를 변혁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정치적 주체다. 우리는 특정 소수에 의한 모든 폭력과 지배, 수탈, 착취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정치적 결의와 소망을 밝히는 바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저항하고, 해체하고자 하는 낡은 질서를 우리는 ‘구(舊) 체제’라 이름 붙이기로 한다. 구 체제는 상생, 순환, 공명이 아닌 분열, 소진, 고립을 낳는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질서로서, 곧 가부장주의, 군사주의, 개발주의, 권위주의, 능력주의, 성장주의, 식민주의, 이성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자본주의, 차별주의 등을 포함한다.

  우리는 작별하고자 하는 구 체제가 우리의 일상과 무의식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고 있다. 유해한 구조 위에 무해한 개인은 없다. 이에 우리는 각자의 삶이 처한 현실을 직면하고 저항과 돌봄을 통해 해방을 경험함으로써, 정치 공동체를 일궈 이 땅에 새 질서와 관계를 뿌리 내리고자 한다. 나아가 우리는 부끄럽고 비통한 역사 앞에 책임을 다하고, 걷잡을 수 없는 붕괴와 소멸, 상실을 애도하고, 생명 살림과 돌봄을 이행할 정치 행위자로서의 국가 '생태공화국'을 구상하고자 한다. 생태공화국이란, 기후위기 시대 정치적 주체이자 생태적 존재임을 스스로 선언한 이들이 탈환할 국가의 청사진을 일컫는다.

  생태공화국에서는 국가와 기업 등 법인의 유지 활동에 의한 생태적 피해가 극심할 시, 법으로써 부여된 법인격을 박탈하거나 해체할 수 있다. 법인이 축적한 자본은 생태공화국에 환수되며, 이는 법인에 소속된 구성원들을 포함한 생태계를 되살리는 데 쓰인다.

  이 땅의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다. 70여 년 전 일어난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외세에 의한 분단은 우리의 얼과 땅을 갈라놓았으며, 자본은 생명 위에 군림하고, 한계 없는 개발과 채굴, 생산과 폐기는 규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장려되고 있다. 구 체제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스스로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는 이 땅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 이들, 억압 당한 이들, 죽임 당한 이들, 죽이라 내몰린 이들, 멸종에 이른 이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 불의의 참사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는 곧 우리다.

  그대 지금 아프다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해방과 지구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지닌 힘을 모아 각자가 처한 현실을 해석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실로 혁명적인 실천이다. 우리 함께 숨탄것들의 나라를 꿈꾸자. 해방의 땅을 노래하자.


2023.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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