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전선』 의제그룹은 지금까지 청년기후긴급행동이 연대해온 경험들을 되돌아보며, 연대의 의미를 곱씹는 것을 시작으로 활동을 전개해나가고자 합니다. 본격적으로 단체가 경험해온 연대체들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기 전에, 우선 각자가 연대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저희 안에서 나누고 글의 형태로 멤버들과 함께 나누고자 기획연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다른 의제그룹에서도 기획연재 참여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며, 많은 댓글과 호응 바랍니다!
청년기후긴급행동 주석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돌봄care의 부재, 즉 무관심carelessness이 지배하는 곳이다.
돌봄 선언, 더 케어 컬렉티브, 2021.
#1.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풍족하고, 많은 관심(Care)을 받고 태어났다. 중학교에 들어서며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며, 우리 가정은 유일한 며느리가 있는 집안이라는 이유로 모든 돌봄(Care)의 책임을 다해야 했다. 특히 내 유일한 양육자였던, 어머니가 간병과 가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졌고, 나는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춘기 몸의 변화로 인해 주변의 모든 관계가 단절되는 경험을 가졌고, 이는 나에 대한 관심의 단절(Careless)이기도 했다. 이후 나는 인정 욕구와 애정 결핍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과정은 이 인정 욕구를 입시 경쟁에서 해소하고자 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억압하며 입시 경쟁을 버텨냈고, 인정 받기에 충분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생활의 앞 절반은 억압된 욕구를 분출하던 시기이며 그 중 가장 큰 욕구는 여전히 인정욕구였다. 인정욕구를 이루는 방법은 주로 누군가의 앞에 서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강단에 서고, 조직의 선두에 섰다. 대학생활 중반기, 잘 나가던 나는 좌절의 시기를 겪었다. 변화시키려고 했던 동아리에서 오히려 쫓겨나고, 함께 욕먹으며 같이 학생운동을 하던 동기들과의 관계도 실패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관계성을 돌아봤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관계성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나의 관심(Care) 받고 싶던 욕구는 나의 취약성, 억압, 그리고 과거 등 나의 삶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돌봄(Care)이 아니었으며, 나는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탈시설 운동을 만났다.
나에게 장애운동은 단절된 관계를 회복 혹은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장애인은 관계 맺을 역량을 박탈당함으로써 권리를 잃어버린 몸들이다. (CICC에서 소개했듯) 나에게 권리 운동이란 이 역량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장애인은 관계를 맺을 역량을 빼앗겼다. 그렇기에 사회에서 이 몸들은 자신의 몸에 맞는 돌봄 역량 또한 갖지 못한다. 놀랍게도, 아니 전혀 평범하게도. 연대라는 이름의 과정도 이들의 역량을 박탈시킬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떤 연대 과정은 언어가 없고, 힘이 없다고 여겨지는 이들에 대한 과도한 자기 투영이다. 자신의 연민을 장애인의 약함이라 부르고, 자신의 관심과 위로에 대한 갈망을 장애운동의 성과라 부르고, 자신의 언어와 개념을 장애운동의 투쟁이라 불렀다.
어쩌면 나도 그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나의 인정 욕구와 애정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이들을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이용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이용은 관계를 맺기 위한 단초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취약성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포장하고자 함은 아닌가이다. 당사자의 삶은 여기서 중요하다. 자신의 연대가 연대임을 증명하는 것은 당사자과의 관계에서 역량이 증진되었는가에 있다. 스피노자는 쾌락적인 관계(좋은 관계)에서는 역량을 증대시키는 힘인 코나투스가 작동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에 기반해 그 사람의 양태(mode, 그 사람이 어떠한 상태로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그렇기에 우린 관계를 기반으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관계다. 이 개념은 활동지원사와 장애인의 관계,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의 관계, 그리고 보조기기와 장애인의 관계에서 쓰일 수 있다.
내가 당사자이든, 아니든.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연대하는 이들이 있고,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리고 이 관계로 인해 어떤 역량이 증진되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나에겐 전장연이 중요하다. 이 거대한 규모의 관계는 어떠한 힘을 형성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 힘의 방향성은 장애 당사자에게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이 만들어내는 힘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힘은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가. 사실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를 위함이 아니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호명할 자격이 있는가. 차라리, 우리를 위해 했음을 당당히 내걸고 우리를 위해 싸우는 것은 눈부시지 않는가. 눈부신 빛 속에 그림자 뒤에 숨겨두는 취약성은 없지 않을까.
#2. 관계가 없다면, 현실을 마주할 용기도 없다.
보건의료학생 매듭이라는 공간은 청년기후긴급행동 이전의 공동체다. 내가 대책위원을 맡을 수 있었던 역량의 기반에는 매듭이라는 공동체에서의 경험이 있었다. 매듭은 나에게 장판을 만나게 해준 또 하나의 계기다. 2016년도 광화문 농성장에 방문해 전장연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때 들었던 장애운동의 명제, "이것(휠체어/보조기기)도 몸이다"와 "의학적 기준(장애등급제)으로 나를 구분 짓지 마라"는 나를 통체로 흔드는 충격이었다.
매듭은 그 어느 단체보다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이론을 다루고, 절박하고 시급한 현장을 찾아갔다. 퀴어페미니즘, 동물권, 장애학 등 아직 국내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이론들과 신간들을 찾아 읽고 현장의 당사자들을 만나는 일정을 매년 가졌다. 여름에는 7박 8일 현장 활동을 진행하고, 겨울에는 2박 3일 포럼을 진행했다. 그러던 2020년 의사파업이 일어났다. 코로나로 인해 공공의료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한편, 정부와 의회 모두 민주당이 집권하며 공공의대를 당론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때였다. 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사그룹은 이에 단체 파업을 선포하며, 덕분에 캠페인을 진행했다. 허나, 덕분에 캠페인은 수어에 대한 모욕임과 동시에 5%도 되지 않은 공공의료에 속한 의료인들이 거의 모든 환자를 도맡아보았고, 사실은 간호사의 역할이 훨씬 컸다는 점에서 위선적이었다. 의사파업은 공공의대를 시작으로 의료인을 시장의 영역에서 정부의 영역으로 옮겨가려는 국가의 시도를 전문가집단인 민간 세력이 막아내는 과정이었다. 놀랍게도, 정부는 결국 의사에게 졌다. 의료권력이 정부권력을 이겨내는 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거의 모든 의대생들은, 특히 마지막 학년인 본과 4학년 학생들은 국시를 거부하며 의사파업을 지지했다. 국시를 치는 학생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병원에 입사하더라도 배신자로 낙인찍힐 것을 견뎌내야 했다. 매듭 친구들 중 일부는 거부했지만, 매듭에 속한 의대생 중 대부분은 의사파업을 찬성했다. 매듭 운영위에서 나와 한 의대생 친구는 반대 성명을 내자고 주장했지만, 결국 다른 의대생 운영위원들에 의해 부결되었다. 그 때 느꼈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정치를 나선다는 건, 자신이 얼마나 진보적이라고 여기는지, 의지를 갖고, 감수성이 뛰어난지와는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그 이후 의사파업을 찬성한 친구들은 하나 둘 행사에 나오지 않았고, 매듭은 쇠퇴했다. 연대는 결국 자신의 정치가 먼저 있고, 그 위에 논의되어야 한다.
위 두 이야기를 통해 내가 긴급행동에 던지고 싶은 연대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그대는 이 연대를 통해서 해결하고 싶은 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대가 비 속에서 우산을 쥐고 있더라도,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우산을 내려놓고 이 비를 같이 맞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할 수 없다면, 그대는 저들을 마주하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를 온전히 마주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저들을 도우러 가는 것이며, 그것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기후긴급행동 주석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돌봄care의 부재, 즉 무관심carelessness이 지배하는 곳이다.
돌봄 선언, 더 케어 컬렉티브, 2021.
#1.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풍족하고, 많은 관심(Care)을 받고 태어났다. 중학교에 들어서며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며, 우리 가정은 유일한 며느리가 있는 집안이라는 이유로 모든 돌봄(Care)의 책임을 다해야 했다. 특히 내 유일한 양육자였던, 어머니가 간병과 가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졌고, 나는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춘기 몸의 변화로 인해 주변의 모든 관계가 단절되는 경험을 가졌고, 이는 나에 대한 관심의 단절(Careless)이기도 했다. 이후 나는 인정 욕구와 애정 결핍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과정은 이 인정 욕구를 입시 경쟁에서 해소하고자 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억압하며 입시 경쟁을 버텨냈고, 인정 받기에 충분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생활의 앞 절반은 억압된 욕구를 분출하던 시기이며 그 중 가장 큰 욕구는 여전히 인정욕구였다. 인정욕구를 이루는 방법은 주로 누군가의 앞에 서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강단에 서고, 조직의 선두에 섰다. 대학생활 중반기, 잘 나가던 나는 좌절의 시기를 겪었다. 변화시키려고 했던 동아리에서 오히려 쫓겨나고, 함께 욕먹으며 같이 학생운동을 하던 동기들과의 관계도 실패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관계성을 돌아봤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관계성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나의 관심(Care) 받고 싶던 욕구는 나의 취약성, 억압, 그리고 과거 등 나의 삶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돌봄(Care)이 아니었으며, 나는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탈시설 운동을 만났다.
나에게 장애운동은 단절된 관계를 회복 혹은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장애인은 관계 맺을 역량을 박탈당함으로써 권리를 잃어버린 몸들이다. (CICC에서 소개했듯) 나에게 권리 운동이란 이 역량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장애인은 관계를 맺을 역량을 빼앗겼다. 그렇기에 사회에서 이 몸들은 자신의 몸에 맞는 돌봄 역량 또한 갖지 못한다. 놀랍게도, 아니 전혀 평범하게도. 연대라는 이름의 과정도 이들의 역량을 박탈시킬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떤 연대 과정은 언어가 없고, 힘이 없다고 여겨지는 이들에 대한 과도한 자기 투영이다. 자신의 연민을 장애인의 약함이라 부르고, 자신의 관심과 위로에 대한 갈망을 장애운동의 성과라 부르고, 자신의 언어와 개념을 장애운동의 투쟁이라 불렀다.
어쩌면 나도 그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나의 인정 욕구와 애정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이들을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이용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이용은 관계를 맺기 위한 단초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취약성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포장하고자 함은 아닌가이다. 당사자의 삶은 여기서 중요하다. 자신의 연대가 연대임을 증명하는 것은 당사자과의 관계에서 역량이 증진되었는가에 있다. 스피노자는 쾌락적인 관계(좋은 관계)에서는 역량을 증대시키는 힘인 코나투스가 작동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에 기반해 그 사람의 양태(mode, 그 사람이 어떠한 상태로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그렇기에 우린 관계를 기반으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관계다. 이 개념은 활동지원사와 장애인의 관계,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의 관계, 그리고 보조기기와 장애인의 관계에서 쓰일 수 있다.
내가 당사자이든, 아니든.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연대하는 이들이 있고,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리고 이 관계로 인해 어떤 역량이 증진되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나에겐 전장연이 중요하다. 이 거대한 규모의 관계는 어떠한 힘을 형성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 힘의 방향성은 장애 당사자에게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이 만들어내는 힘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힘은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가. 사실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를 위함이 아니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호명할 자격이 있는가. 차라리, 우리를 위해 했음을 당당히 내걸고 우리를 위해 싸우는 것은 눈부시지 않는가. 눈부신 빛 속에 그림자 뒤에 숨겨두는 취약성은 없지 않을까.
#2. 관계가 없다면, 현실을 마주할 용기도 없다.
보건의료학생 매듭이라는 공간은 청년기후긴급행동 이전의 공동체다. 내가 대책위원을 맡을 수 있었던 역량의 기반에는 매듭이라는 공동체에서의 경험이 있었다. 매듭은 나에게 장판을 만나게 해준 또 하나의 계기다. 2016년도 광화문 농성장에 방문해 전장연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때 들었던 장애운동의 명제, "이것(휠체어/보조기기)도 몸이다"와 "의학적 기준(장애등급제)으로 나를 구분 짓지 마라"는 나를 통체로 흔드는 충격이었다.
매듭은 그 어느 단체보다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이론을 다루고, 절박하고 시급한 현장을 찾아갔다. 퀴어페미니즘, 동물권, 장애학 등 아직 국내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이론들과 신간들을 찾아 읽고 현장의 당사자들을 만나는 일정을 매년 가졌다. 여름에는 7박 8일 현장 활동을 진행하고, 겨울에는 2박 3일 포럼을 진행했다. 그러던 2020년 의사파업이 일어났다. 코로나로 인해 공공의료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한편, 정부와 의회 모두 민주당이 집권하며 공공의대를 당론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때였다. 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사그룹은 이에 단체 파업을 선포하며, 덕분에 캠페인을 진행했다. 허나, 덕분에 캠페인은 수어에 대한 모욕임과 동시에 5%도 되지 않은 공공의료에 속한 의료인들이 거의 모든 환자를 도맡아보았고, 사실은 간호사의 역할이 훨씬 컸다는 점에서 위선적이었다. 의사파업은 공공의대를 시작으로 의료인을 시장의 영역에서 정부의 영역으로 옮겨가려는 국가의 시도를 전문가집단인 민간 세력이 막아내는 과정이었다. 놀랍게도, 정부는 결국 의사에게 졌다. 의료권력이 정부권력을 이겨내는 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거의 모든 의대생들은, 특히 마지막 학년인 본과 4학년 학생들은 국시를 거부하며 의사파업을 지지했다. 국시를 치는 학생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병원에 입사하더라도 배신자로 낙인찍힐 것을 견뎌내야 했다. 매듭 친구들 중 일부는 거부했지만, 매듭에 속한 의대생 중 대부분은 의사파업을 찬성했다. 매듭 운영위에서 나와 한 의대생 친구는 반대 성명을 내자고 주장했지만, 결국 다른 의대생 운영위원들에 의해 부결되었다. 그 때 느꼈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정치를 나선다는 건, 자신이 얼마나 진보적이라고 여기는지, 의지를 갖고, 감수성이 뛰어난지와는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그 이후 의사파업을 찬성한 친구들은 하나 둘 행사에 나오지 않았고, 매듭은 쇠퇴했다. 연대는 결국 자신의 정치가 먼저 있고, 그 위에 논의되어야 한다.
위 두 이야기를 통해 내가 긴급행동에 던지고 싶은 연대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그대는 이 연대를 통해서 해결하고 싶은 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대가 비 속에서 우산을 쥐고 있더라도,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우산을 내려놓고 이 비를 같이 맞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할 수 없다면, 그대는 저들을 마주하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를 온전히 마주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저들을 도우러 가는 것이며, 그것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