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구석구석이 먼지 낀 책상 위 누군가 살았을 조개의 집(조개껍데기), 동네 산책길의 가로수, 천변의 오리, 천변, 마른 잎사귀, 창문과 도로 사이 작은 대지 위 이름 모를 풀들과, 이들이 자라는 땅, 그 위에 하늘(대기), 하늘을 비추는 바다, 수많은 해변 중에서도 맹방 해변, 맹방해변과 삼척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존재들과, 지켜내려는 존재들과 나는 모두 연결되어 있을까.
2.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세상이란 거대한 바다에서 멍하니 떠돌고 있는 것만 같은 요즘이다.
또 툭 하면, 구호처럼 들려오는 반짝이는, 정말 중요하다는 것들이 널려있고, 나는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그걸 배 속에 꾸역꾸역 우겨 넣는다. 이것들을 소화시키느라, 내가 탄 바다 위에 배가 어디로 가나 상관할 기력도 없다. 세상은 자꾸만 내가 채취해야 할 것으로 보이고, 세상을 채취하는 내 눈과 이를 갈망하는 내 심장은 이 상황을 잘 모르나보다. 또 세상, 즉 나와 함께 존재하는 존재들이 어떤 존재인지 내가 잘 모르나보다. 이렇게 기괴하고, 잔인한 나를 잘 보지 못하는 걸 보니.
바다 위에는 섬도 있지. 그 섬 중 하나가 내겐 청년기후긴급행동이다. 그 섬은 멍청한 (배 위) 나를 환대해준다. 그 섬이 있기에 나는 걷는다. 그리고서 내가 발이 있는 존재임을 다시 기억한다. (작은 배에만 있다 보면 이를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3.
뭐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겠는 요즘이다. 내가 말하는 것, 그리는 것, 쓰는 것 등등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겠다.
올 봄에 삼척을 들렀다. 하지만 내가 정말 갔다고 할 수 있을지
이름 모를 풀꽃을 위한 졸업 프로젝트를 할 거라고 하거나, 하고 있다지만(정말로 쓰고 그리고 만나고 기록하고 있는데도) 정말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또 이런 나를 들여다보고 나면, 허무하고 슬퍼진다.
이제야 길 위를 한. 걸음 내딛는다. 가장 천천히 걷기를 나는 내게 이야기한다.
그제 서야 내가 걷고 있는 사치스런 산책로의 풀의 삶터를 깔끔하고 매끄럽게 덮고서, 풀을 흉내 낸 초록색 콘크리트길과, 콘크리트 옆에 핀 풀과 풀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울해서 걷고, 걷다보면 우울이 가시고, 나는 어느새 소화시키는데 바빠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풀꽃들, 이제는 (겨울이라) 잎이 거의 없는 나무들에게 가 있다.
분명히 떠돌고 있었는데,
나무들에게 가 있다가도, 또 어느새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잊어버리고, 또 다시 바다를 떠돈다. 유령처럼. 그렇게 바다를 떠돌며 지내기 무섭다. (바다라 비유하는 게 맞는 건지 조심스럽다.)
콘크리트 옆 풀꽃에 있을 때, 또 가는 길목에 청년기후긴급행동을 떠올린다.
또 긴급행동을 만날 때 풀꽃이 떠오른다.
언제부터 바다가 그렇게 넓어졌을까.
물 밑엔 원래 마을이 있지 않았을까.
원래부터 콘크리트길이 저 땅위에 있었나.
바다 위에 석탄발전소는 어디에서 왔고, 왜 (여기에) 있(어야하)는가.
눈물처럼 나를 씻어주는 풀꽃이,
온기에 소름 돋게 만드는 사람들이 산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도, 바다에 사는 생명(존재)도 있다.
바다 위에는 바람도 있고, 옆에는 마을도 있다.
피고, 지고, 땅과 바다와 하늘로 돌아가는 존재들이 그곳에 산다.
거대한 고철더미 공사장이 이들 가슴 위를, 손끝 위를 파고들며 잔인하게 자리 잡는다.
풀꽃을 오랫동안 바라본 존재들이 있다.
저 바다가 어떤 바다인지 아는 존재들이 있다.
바다와 마을의 삶을 일궈낸 존재들이 있다.
4.
피고, 살고, 져서 다시 대지와 바다와 하늘로 돌아가는 존재들이, 아무와도 만나지 못하는 거대한 물결에 떠다니던 나를, 돌에 채이고, 밋밋한 물 아래 거친 자갈땅에 발을 디디게 한다.
거대한 물결로 추방하는 자가 있고, 누군가를 존재가 있는 땅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존재가 있다.
한편 뭍으로 나온 아이는 울며, 땅으로 돌아갔다.
1.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구석구석이 먼지 낀 책상 위 누군가 살았을 조개의 집(조개껍데기), 동네 산책길의 가로수, 천변의 오리, 천변, 마른 잎사귀, 창문과 도로 사이 작은 대지 위 이름 모를 풀들과, 이들이 자라는 땅, 그 위에 하늘(대기), 하늘을 비추는 바다, 수많은 해변 중에서도 맹방 해변, 맹방해변과 삼척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존재들과, 지켜내려는 존재들과 나는 모두 연결되어 있을까.
2.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세상이란 거대한 바다에서 멍하니 떠돌고 있는 것만 같은 요즘이다.
또 툭 하면, 구호처럼 들려오는 반짝이는, 정말 중요하다는 것들이 널려있고, 나는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그걸 배 속에 꾸역꾸역 우겨 넣는다. 이것들을 소화시키느라, 내가 탄 바다 위에 배가 어디로 가나 상관할 기력도 없다. 세상은 자꾸만 내가 채취해야 할 것으로 보이고, 세상을 채취하는 내 눈과 이를 갈망하는 내 심장은 이 상황을 잘 모르나보다. 또 세상, 즉 나와 함께 존재하는 존재들이 어떤 존재인지 내가 잘 모르나보다. 이렇게 기괴하고, 잔인한 나를 잘 보지 못하는 걸 보니.
바다 위에는 섬도 있지. 그 섬 중 하나가 내겐 청년기후긴급행동이다. 그 섬은 멍청한 (배 위) 나를 환대해준다. 그 섬이 있기에 나는 걷는다. 그리고서 내가 발이 있는 존재임을 다시 기억한다. (작은 배에만 있다 보면 이를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3.
뭐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겠는 요즘이다. 내가 말하는 것, 그리는 것, 쓰는 것 등등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겠다.
올 봄에 삼척을 들렀다. 하지만 내가 정말 갔다고 할 수 있을지
이름 모를 풀꽃을 위한 졸업 프로젝트를 할 거라고 하거나, 하고 있다지만(정말로 쓰고 그리고 만나고 기록하고 있는데도) 정말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또 이런 나를 들여다보고 나면, 허무하고 슬퍼진다.
이제야 길 위를 한. 걸음 내딛는다. 가장 천천히 걷기를 나는 내게 이야기한다.
그제 서야 내가 걷고 있는 사치스런 산책로의 풀의 삶터를 깔끔하고 매끄럽게 덮고서, 풀을 흉내 낸 초록색 콘크리트길과, 콘크리트 옆에 핀 풀과 풀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울해서 걷고, 걷다보면 우울이 가시고, 나는 어느새 소화시키는데 바빠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풀꽃들, 이제는 (겨울이라) 잎이 거의 없는 나무들에게 가 있다.
분명히 떠돌고 있었는데,
나무들에게 가 있다가도, 또 어느새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잊어버리고, 또 다시 바다를 떠돈다. 유령처럼. 그렇게 바다를 떠돌며 지내기 무섭다. (바다라 비유하는 게 맞는 건지 조심스럽다.)
콘크리트 옆 풀꽃에 있을 때, 또 가는 길목에 청년기후긴급행동을 떠올린다.
또 긴급행동을 만날 때 풀꽃이 떠오른다.
언제부터 바다가 그렇게 넓어졌을까.
물 밑엔 원래 마을이 있지 않았을까.
원래부터 콘크리트길이 저 땅위에 있었나.
바다 위에 석탄발전소는 어디에서 왔고, 왜 (여기에) 있(어야하)는가.
눈물처럼 나를 씻어주는 풀꽃이,
온기에 소름 돋게 만드는 사람들이 산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도, 바다에 사는 생명(존재)도 있다.
바다 위에는 바람도 있고, 옆에는 마을도 있다.
피고, 지고, 땅과 바다와 하늘로 돌아가는 존재들이 그곳에 산다.
거대한 고철더미 공사장이 이들 가슴 위를, 손끝 위를 파고들며 잔인하게 자리 잡는다.
풀꽃을 오랫동안 바라본 존재들이 있다.
저 바다가 어떤 바다인지 아는 존재들이 있다.
바다와 마을의 삶을 일궈낸 존재들이 있다.
4.
피고, 살고, 져서 다시 대지와 바다와 하늘로 돌아가는 존재들이, 아무와도 만나지 못하는 거대한 물결에 떠다니던 나를, 돌에 채이고, 밋밋한 물 아래 거친 자갈땅에 발을 디디게 한다.
거대한 물결로 추방하는 자가 있고, 누군가를 존재가 있는 땅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존재가 있다.
한편 뭍으로 나온 아이는 울며, 땅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