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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231219] [김공룡야학] 아픈 몸 종합 토론 발화 정리글 - 핀풀

길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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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강 중심 사회에서 말하는 건강에 부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건강하냐고 묻는다면 건강하다고 답할 것이다. 그런 나도 아픈 몸인지 고심이 깊었다. 아픈 몸이 무엇일까. 이윤 극대화를 위한 경쟁과 착취로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그 속도에 맞춰 살아가지 못하는 불화하는 존재들을 아픈 몸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아픈 몸이라고 생각한다. 벗어나야지 하면서도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부모라는 조건이 사라진다고 한다면 나는 이 사회 속에서 스펙이 없어 팔리지 않는 몸이다. 불안정한 노동과 주거와 먹거리로 삶을 지탱해야 하고 나는 언제든지 아픈 몸이 될 수 있다. 지금 나의 몸이 별 무리 없이 생활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빠른 시일 내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것이 뻔하다.


한 달 전에 신검을 받았다. 1급이 나왔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정상적인 신체의 기준은 남성의 몸에 맞춰져 있다. 신검을 받으면서 그 기준은 학살과 침략을 하며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신체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로 나는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지만 가장 먼저 죽음의 취약성에 노출된 존재이다. 나는 나의 삶을 지킬 권력과 목소리가 없는 몸인 것이다. 국가 권력이 지키는 것은 기존의 폭력적이고 착취적이며 죽음을 부르는 질서이며, 국가가 폭력을 허용할 수 있는 정당성을 무력으로 지탱하는 것이 군대라고 생각한다. 나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살인 무기이기도 하지만 그 전장에서 한 줌에 재처럼 쉽게 사라질 몸이기도 하다. 죽이고 죽도록 하는 권력 구조 속에서 나의 위치는 교차한다. 그래서 나는 권력 앞에 취약한 몸, 즉 아픈 몸이라고 나를 정의 해 본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조한진희님은 아픈 몸이 겪는 시간, 관계, 경제 등 3가지 빈곤에 대해서 말한다. 아프면 시간이 없고, 관계가 단절되고, 정상적인 몸에 맞춰진 생산 시스템과 민영화된 의료 등으로 인해서 경제적인 빈곤에 처한다고 한다. 나에게는 관계의 단절이 큰 것 같다. 이분법적인 사회 속에서 나의 관계는 나만을 위한 존재 방식으로 인해서 모든 관계의 단절을 겪었었다. 나에게는 내가 아프고 불안하고,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그  취약성을 드러내고 폭력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관계와 공동체가 필요하다. 내가 누군가를 짓밟으면서 인정받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폭력이 사라진 관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인 관계망으로는 공동체를 지속하는데 한계가 있다. 경제적인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공동체는 존속하기 어렵고, 모두가 그런 공동체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후원과 협동조합 등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를 넘어서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분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수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의 경제 활동이 정당화되는 구조를 변혁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문화적 차원과 경제적 차원은 모두 중요하다. 돌봄을 하고, 관계를 맺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그 관계의 질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운동을 상상할 때 나는 대안적인 관계 맺기와 문화, 공동체를 일궈 나가면서, 그 공동체가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기존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정치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이 진행한 CICC 세대 간 기후 범죄법에서는 생태학살 기업의 법인격을 해체하고 이들의 자원을 실제 사람들이 관계 맺고 살아가는 장소 기반 공동체로 환수하고 대안적인 공동체를 일구기 위한 자원으로 사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긴급행동의 운동을 상상해 본다. 건강중심주의에 반기를 드는 아픈 몸의 존재를 정상성을 상정하는 사회구조로 인해서 발생하는 아픔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폭력, 학교 폭력, 가부장적 폭력, 군사주의적 폭력을 가하는 존재가 되거나 피해를 받는 존재가 되는 관계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긴급행동은 그것들이 불가능한 대안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계적 동력 속에서 작금의 체제를 해체하고 아픔 몸들의 관계를 정치화하는 운동을 긴급행동의 운동으로 상상해 본다.


정상성을 추구하고 그 길밖에 없다고 말하는 세상을 거부하고 다른 세상을 원하는 불화하는 몸들이 드러나는 것은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드러나지 않았고 보지 않으려고 했던  존재들이 드러나는 것이 긴급행동의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몸과 삶, 현장이 빠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운동은 실패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짧은 기간이나마 나는 나의 삶과 함께하는 이들의 삶이 배제된 운동의 공허함을 느꼈다. 나에게는 자신의 아픈 몸을 드러내고, 드러낼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며, 그것들을 함께 해나갈 동지가 필요하다. 서로의 삶에 귀 기울이고, 서로의 아픔을 증언하고, 우리의 아픔을 확장하며, 아픈 존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는 운동을 해 나가고 싶다. 자주 혼란스럽고 의심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삶과 아픔으로부터 물러설 곳이 없는 이들의 운동이야말로 변혁에 가까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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