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이 지나갈 무렵, 이대로 넘어가기 전에 무언가 남기고 가야 할 것 같다. 후쿠시마 이야기다. 후쿠시마현에서 그 비극이 빚어진 지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날을 돌아봐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기억하자는 말을 반복해서 입에 올리고 있다. 무엇을 기억해야하는지 어떻게 기억해야하는지 왜 기억해야하는지 조금 말문이 막힌 채.
잠시 시야를 옮겨보자. 누군가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 보인다. 혹은 강산이 변하는 시간 속에서 기억이 희미해졌거나. 그렇지 않고서는 AI든, 데이터센터든, 원유수급이든, 탈석탄이든 갖은 이유를 대며 핵발전소를 새로 짓겠다는 정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 정부의 마음이 정말 국민의 마음일까.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지만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7할이 찬성했다는데, 정말 이 나라의 사람들은 이 좁은 땅에 핵발전소가 더 지어지기를 바라는가. 바라는 것까지는 아니라면,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차선이거나 차악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나는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다.
탈핵이란 말에 이젠 대개의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낀다고 누군가 전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저래서인지 새로 짓는 핵발전소를 막으려 모인 연대체 이름에서 ‘탈핵’이 ‘신규 핵발전소 저지’정도로 순화(?)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조금 씁쓸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 닥친 미증유의 재난을 직관하고, 이건 아니다 싶어 일어난 이들이 한 땀 한 땀 만들어 온 탈핵운동이다. 우리의 탈핵운동은 결국, 지난 15년간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걸까. 섣부르지만 아픈 질문이다. 지역 곳곳에서 피땀눈물로 애써온 분들의 헤아릴 길 없는 수고를 조금이나마 알기에 말을 뱉었다가 다시 주워 담게 된다. 다만, 어떤 이상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 뿐이다.
이 이상함은 어쩌다 후쿠시마를 다녀오고 나서 생긴 감정이다. 최악의 참사이자, 지옥의 땅, 아직까지/앞으로도 극도로 위험한 곳으로 여겨 온 시공간을 내 발로 내 손으로 거닐고 와서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감각이 생겼다. 알다시피 현장은 하나의 우주와 같은 복합체다. 거기에 대해서 이런들 저런들 말을 붙인들 그것 역시 하나의 부분에 대한 묘사에 지나지 않는다. 후쿠시마 또한 ‘지옥의 땅’이라는 네 글자로 설명될 수는 없다. 우리를 붕앙이라는 현장으로 옮기게 했던 말처럼 “그곳에 사람이 있었”고, 여러 사람들이 부족하나마나 복구와 회복에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이처럼 수많은 맥락이 상존하는 어떤 시공간에서 ‘오염수/처리수 방류’와 ‘수산물(물살이) 수입’이라는 이야기만 문제시되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오염수/처리수를 방류하면 문제이고,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까. 다른 사람 이야기할 것도 없이 내가 그랬던 것 같아 낯부끄러워졌다. 우리 공동의 비극을 너희들의 비극으로 알게 모르게 여기고 말해왔던 것은 아닐까. 후쿠시마에 핵사고가 났다는 사실 외에 후쿠시마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질문은 또 이어진다. 우리의 탈핵운동이 후쿠시마를 말해 온 방식은, 이 낯부끄러움과 무관할 수 있는가. 후쿠시마를 기억하자고 모인 우리는 정말 후쿠시마를 알고 있을까. 연결되어 있을까.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우리는 탈핵이라는 대의를 위해 후쿠시마를 명분으로 삼아 온 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과 함께 후쿠시마 15주기 하루 전 긴급행동 안에서 작은 전야 모임을 열었다. 후쿠시마에 다녀와서 이것저것 멤버들에게 털어놓다가 만들어진 자리다. 저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고 찾고 싶은 마음은 우리에게 모두 굴뚝같다. 기억이든 투쟁이든 이야기를 듣는 게 먼저다. 그렇게 나를 포함해 어쩌다 후쿠시마에 다녀온 혜선(텃밭농부/재연결작업 덕후), 건우(연구활동가-였나?/사반세기 김포시민)와 함께 자리를 마련했다. 이렇게 모시는 말을 썼다.
“어느새 후쿠시마 핵사고가 빚어졌던 3·11 15주기가 다가옵니다. 후쿠시마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는 다들 들어봤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후쿠시마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십오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우리가 후쿠시마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야기는 몇 줄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한일 양국에서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계획이 우후죽순 발표되는 이때, 한편에서는 후쿠시마의 재난을 잊어버린 듯 부흥의 주문을 외고, 다른 한편에서는 후쿠시마라는 지옥도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바로, 지금, 여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3·11을 하루 앞둔 전야의 밤, 어쩌다 후쿠시마에 다녀온 세 분을 초대합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후쿠시마와 다시 연결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후쿠시마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후쿠시마에서 만난 이들은 어느 한두 유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맥락을 생에 담고 있었다. 나는 계속 아른거렸던 고향에 돌아온, 혹은 이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 이야기를 말했다. 살처분 명령을 거부하고 소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 직접 방사능을 측정하며 위험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시민들, 사진을 찍다가 연결되어 미술관을 꾸린 이, 소설을 쓰다가 책방을 차린 이들의 이야기까지 후쿠시마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가 으레 짐작하는 ‘피해 지역 주민’의 모습만으로 환원되지는 않았다.
건우는 사고 후 버려진 농지에서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를 세워 살아가는 ‘햇볕의 농부들’ 이야기를 전했다. 이들은 “우리가 평생 농사만 고민했는데 에너지 문제도 고민해야 했구나”하고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분명히 슬픈, 형용할 수 없는 비극이지만, 이를 계기로 ‘이후의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혜선은 후쿠시마의 사람들과 만나 연결된 스스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중에는 7년 만에 돌아와 꽃을 기르는 농부도 있고, 자립의 소망을 품고 일자리가 있는 이곳에 정착한 여성들도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분명 아픈 시간이었지만, 아픔으로써 연결될 수 있지 않았냐고 자문한다. “‘아, 내가 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구나. 그의 고통과 연결될 수 있구나. 내가 후쿠시마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구나.” 혜선이 말하듯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통해 다시 연결된다는 것은, 이전까지 우리가 알던 세계 밖으로 걸어 나가는 일과 같겠다.
다음날, 2026년 3월 11일, 광화문 광장으로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기억하라, 후쿠시마”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미사와 집회가 이어졌다. 들려오는 여러 발언들을 노트에 적었다. 뭔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후쿠시마를 기억한다는 것은 연결되는 것이다. 폐허에서 길을 찾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에.



삼월이 지나갈 무렵, 이대로 넘어가기 전에 무언가 남기고 가야 할 것 같다. 후쿠시마 이야기다. 후쿠시마현에서 그 비극이 빚어진 지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날을 돌아봐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기억하자는 말을 반복해서 입에 올리고 있다. 무엇을 기억해야하는지 어떻게 기억해야하는지 왜 기억해야하는지 조금 말문이 막힌 채.
잠시 시야를 옮겨보자. 누군가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 보인다. 혹은 강산이 변하는 시간 속에서 기억이 희미해졌거나. 그렇지 않고서는 AI든, 데이터센터든, 원유수급이든, 탈석탄이든 갖은 이유를 대며 핵발전소를 새로 짓겠다는 정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 정부의 마음이 정말 국민의 마음일까.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지만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7할이 찬성했다는데, 정말 이 나라의 사람들은 이 좁은 땅에 핵발전소가 더 지어지기를 바라는가. 바라는 것까지는 아니라면,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차선이거나 차악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나는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다.
탈핵이란 말에 이젠 대개의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낀다고 누군가 전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저래서인지 새로 짓는 핵발전소를 막으려 모인 연대체 이름에서 ‘탈핵’이 ‘신규 핵발전소 저지’정도로 순화(?)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조금 씁쓸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 닥친 미증유의 재난을 직관하고, 이건 아니다 싶어 일어난 이들이 한 땀 한 땀 만들어 온 탈핵운동이다. 우리의 탈핵운동은 결국, 지난 15년간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걸까. 섣부르지만 아픈 질문이다. 지역 곳곳에서 피땀눈물로 애써온 분들의 헤아릴 길 없는 수고를 조금이나마 알기에 말을 뱉었다가 다시 주워 담게 된다. 다만, 어떤 이상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 뿐이다.
이 이상함은 어쩌다 후쿠시마를 다녀오고 나서 생긴 감정이다. 최악의 참사이자, 지옥의 땅, 아직까지/앞으로도 극도로 위험한 곳으로 여겨 온 시공간을 내 발로 내 손으로 거닐고 와서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감각이 생겼다. 알다시피 현장은 하나의 우주와 같은 복합체다. 거기에 대해서 이런들 저런들 말을 붙인들 그것 역시 하나의 부분에 대한 묘사에 지나지 않는다. 후쿠시마 또한 ‘지옥의 땅’이라는 네 글자로 설명될 수는 없다. 우리를 붕앙이라는 현장으로 옮기게 했던 말처럼 “그곳에 사람이 있었”고, 여러 사람들이 부족하나마나 복구와 회복에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이처럼 수많은 맥락이 상존하는 어떤 시공간에서 ‘오염수/처리수 방류’와 ‘수산물(물살이) 수입’이라는 이야기만 문제시되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오염수/처리수를 방류하면 문제이고,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까. 다른 사람 이야기할 것도 없이 내가 그랬던 것 같아 낯부끄러워졌다. 우리 공동의 비극을 너희들의 비극으로 알게 모르게 여기고 말해왔던 것은 아닐까. 후쿠시마에 핵사고가 났다는 사실 외에 후쿠시마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질문은 또 이어진다. 우리의 탈핵운동이 후쿠시마를 말해 온 방식은, 이 낯부끄러움과 무관할 수 있는가. 후쿠시마를 기억하자고 모인 우리는 정말 후쿠시마를 알고 있을까. 연결되어 있을까.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우리는 탈핵이라는 대의를 위해 후쿠시마를 명분으로 삼아 온 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과 함께 후쿠시마 15주기 하루 전 긴급행동 안에서 작은 전야 모임을 열었다. 후쿠시마에 다녀와서 이것저것 멤버들에게 털어놓다가 만들어진 자리다. 저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고 찾고 싶은 마음은 우리에게 모두 굴뚝같다. 기억이든 투쟁이든 이야기를 듣는 게 먼저다. 그렇게 나를 포함해 어쩌다 후쿠시마에 다녀온 혜선(텃밭농부/재연결작업 덕후), 건우(연구활동가-였나?/사반세기 김포시민)와 함께 자리를 마련했다. 이렇게 모시는 말을 썼다.
“어느새 후쿠시마 핵사고가 빚어졌던 3·11 15주기가 다가옵니다. 후쿠시마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는 다들 들어봤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후쿠시마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십오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우리가 후쿠시마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야기는 몇 줄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한일 양국에서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계획이 우후죽순 발표되는 이때, 한편에서는 후쿠시마의 재난을 잊어버린 듯 부흥의 주문을 외고, 다른 한편에서는 후쿠시마라는 지옥도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바로, 지금, 여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3·11을 하루 앞둔 전야의 밤, 어쩌다 후쿠시마에 다녀온 세 분을 초대합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후쿠시마와 다시 연결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후쿠시마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후쿠시마에서 만난 이들은 어느 한두 유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맥락을 생에 담고 있었다. 나는 계속 아른거렸던 고향에 돌아온, 혹은 이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 이야기를 말했다. 살처분 명령을 거부하고 소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 직접 방사능을 측정하며 위험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시민들, 사진을 찍다가 연결되어 미술관을 꾸린 이, 소설을 쓰다가 책방을 차린 이들의 이야기까지 후쿠시마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가 으레 짐작하는 ‘피해 지역 주민’의 모습만으로 환원되지는 않았다.
건우는 사고 후 버려진 농지에서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를 세워 살아가는 ‘햇볕의 농부들’ 이야기를 전했다. 이들은 “우리가 평생 농사만 고민했는데 에너지 문제도 고민해야 했구나”하고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분명히 슬픈, 형용할 수 없는 비극이지만, 이를 계기로 ‘이후의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혜선은 후쿠시마의 사람들과 만나 연결된 스스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중에는 7년 만에 돌아와 꽃을 기르는 농부도 있고, 자립의 소망을 품고 일자리가 있는 이곳에 정착한 여성들도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분명 아픈 시간이었지만, 아픔으로써 연결될 수 있지 않았냐고 자문한다. “‘아, 내가 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구나. 그의 고통과 연결될 수 있구나. 내가 후쿠시마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구나.” 혜선이 말하듯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통해 다시 연결된다는 것은, 이전까지 우리가 알던 세계 밖으로 걸어 나가는 일과 같겠다.
다음날, 2026년 3월 11일, 광화문 광장으로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기억하라, 후쿠시마”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미사와 집회가 이어졌다. 들려오는 여러 발언들을 노트에 적었다. 뭔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후쿠시마를 기억한다는 것은 연결되는 것이다. 폐허에서 길을 찾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