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전선』 의제그룹은 지금까지 청년기후긴급행동이 연대해온 경험들을 되돌아보며, 연대의 의미를 곱씹는 것을 시작으로 활동을 전개해나가고자 합니다. 본격적으로 단체가 경험해온 연대체들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기 전에, 우선 각자가 연대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저희 안에서 나누고 글의 형태로 멤버들과 함께 나누고자 기획연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다른 의제그룹에서도 기획연재 참여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며, 많은 댓글과 호응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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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나와 세계의 끈질긴 얽힘을 통해서 쓰인 이야기이다. 내가 놓인 조건은 나를 지배적 질서대로 살아가게끔 수많은 밑 작업을 쳐 놓았다.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지배적 질서의 작동은 나에게 상처를 입혔고, 상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를, 지금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향하게 했다. 과오와 반성으로 쓰인 이야기는 이제껏 세계가 나를 규정지어 온 방식에 맞선 처절한 파괴의 몸 부림이다. 나에게 남은 상흔들은 내 삶을 되찾고자 하는 저항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 불행한 관계는 폭력의 논리로 나를 살게 하지만, 내가 그것을 변혁하고자 했을 때 그 관계는 반응한다. 잘못된 현실로부터의 도피는 상처에 대한 올바른 해답이 아니다. 그 무엇도 세계의 외부에서 나를 구원해 주지 않는다. 상처를 응시하고, 철옹성 같은 구조를 마주하고, 그것을 해체하고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 만이 나의 상처에 응답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내가 운동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내가 나의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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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행하는 나. 성희롱이 오가던 단톡방. 나는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고 남성문화의 일원이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남자 아이들 간의 관계 속에서 중심에 있었다. 운동을 좋아하고 잘했던 나는 이겨야 했고, 많은 경우에 이겼다.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주어지는 인정을 통해서 나는 나의 존재감을 느꼈다. 누군가를 짓밟아야지 내가 인정받는다는 것은 어려서부터 학습한 나의 존재 방식이었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게임이 끝난 뒤에도 나는 나를 위한 게임을 만들어야 했다.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를 인정해 줄 무리가 필요했고, 내가 짓밟아야 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 어린아이들이 무리와 타자를 나눴던 기준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상성/남성성이었다. 신체의 왜소함, 말의 어눌함, 행동의 느림 등 정상적인 남성성에 들지 않는 이들은 배제와 폭력의 대상이 되었고, 정상적인 남성성에 부합하는 이들은 나를 정상적인 존재로 인정해 줄 집단이 되었다. 저학년 때는 비남성적 존재를 향한 크고 작은 물리적, 정신적 학교 폭력이 일상적, 집단적으로 이뤄졌고, 상대적으로 나이가 들었을 때는 온라인 단톡방에서 같은 반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언어폭력이 이뤄졌다. 한 존재의 존엄을 파괴할 때 진짜 파괴되었던 것은 폭력적으로 관계 맺는 방법밖에 몰랐던 나 자신이었다. 내 과거는 죄책감과 자괴감 속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지만 죽지 못했고, 과거와 같은 방식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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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의 남성 문화는 미디어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학교 정책에 의해서 몰폰이 발각되며 중단되었다. 정확히 말해서 남성문화가 중단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백이 생겨났다.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대안학교에 다니던 나는 부모와 선생 등을 통해서 인권과 페미니즘 등을 접할 수 있었다. 내 행위에 대한 과오는 명확해졌고, 인권과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평등과 정의는 내 삶의 도피처가 되기에 충분했다. 나는 다시는 내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내 눈앞에 벌어지는 불의와 죽음을 끝내야 했다. 9학년 때 상급과정에 진학한 나는 페미니즘 동아리에 들어갔고, 비건이 되었으며, 대규모 기후행동에 참여했다. 올바름을 쫓던 나는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매체와 수업 등으로 접했고, 기후위기, 불평등, 동물착취 등의 뿌리에서 자본주의 체제와 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을 외치는 기후정의 운동을 만났다. 12학년 때는 학교에서 기후정의동아리를 만들고 대안학교 청소년들의 기후정의연대도 만들었다. 학교와 연대에서 기후정의를 위한 강연과 토론 등을 조직했고, 924 기후정의행진에서는 내가 영향을 받은 글의 저자들에게 호응을 얻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924 기후정의행진은 나에게 희망과 해방의 기운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그러나 행진이 끝나고 홀로 남았을 때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찾아왔다. 회현역 근처 벤치에서 줄담배를 30분 동안 피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분명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았지만 나는 혼자였다. 폭력적인 관계 속에서 가해자였던 나는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내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4년 동안의 삶과 운동은 사회적으로 옳았다고 쳐도, 분명한 것은 내게 남은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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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학년 졸업식 마침 시간이었다. 그 아이는 반 아이들을 향해 그 동안에 학교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로 너희들을 죽여버리고 싶었다고 하며 관계를 끊겠다고 말했다. 가해자 혹은 방관자였던 아이들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자기 잘못은 없는지 다가가서 물었다. 오만하게도 그 아이와 관계가 완만해졌다고 해서 관계가 회복된 줄 알았다. 가해자들은 자기 잘못을 모르고 학교는 방관하기만 했다. 나는 정의롭다고 착각하며 살아왔지만, 몇 년 전과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은 현실을 마주했다. 몇 달 후에는 페미니즘 동아리를 같이 했던 남자아이가 같은 반 친구를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질렀다. 그렇게도 벗어나려고 했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며 존재감을 느끼는 남성문화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의 탈폭력은 그저 폭력적인 현실로부터의 도피였을 뿐이었다. 그 무엇도 바꾸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내 삶에 대한 회의로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간의 올바름에 대한 추구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기만에 불과했다. 나는 나를 가해자로 만든 나 자신과 친구와 부모와 선생과 사회를 혐오하기만 했을 뿐이지 폭력적인 관계를 넘어서 폭력이 사라진 방식으로 관계 맺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자본주의를 뒤엎자는 구호는 공허했고, 당위에 동원해야 하는 대상이 있을 뿐 관계도 실체도 사라진 곳에서 나는 혼자였다. 다시 제자리에 놓인 나에게는 진정한 성찰이 필요했다. 과거의 행위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 내 행위가 작동했던 뿌리를 바꿔야 했다. 그때 비로소 긴급행동의 자기해방과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공동체적 회복이 나의 문제로 와닿았다. 지배질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경쟁과 폭력, 고립, 억압 등 구체적인 상처로 드러난다. 나는 나에게 드러난 남성성과 인정욕이라는 상처를 마주해야 했다. 긴급행동의 공동체적 회복은 폭력이 사라진 방식으로 관계 맺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었다. 미시적인 관계에서부터 폭력을 해체하고 공동체를 재구성한 힘과 동력은 관계에 대한 도피가 아닌 변혁된 관계를 맺으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정치적인 대안으로 다가왔다.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회복 과정에서 변혁적 정의에 대해서 외쳤듯이, 긴급행동이 해나가고자 하는 운동은 아래에서부터 관계를 재구성하는 동력으로 폭력을 재생산하는 체제에 대한 변혁을 향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해나고자 하는 운동이 나만의 대안을 넘어서 모두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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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내 운동은 폭력적인 방식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었던 관계와 조건을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폭력에 물들어 빼앗긴 존엄을 되찾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일상에 스며든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 폭력 등 위계적인 문화부터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해서 공동의 삶의 기반을 빼앗으며 경쟁과 빈곤, 부채의 더미로 내몰리게 하고, 생산에 적합한 이성과 합리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열등한 영역에 대한 수탈이 가능하게 하며, 극단적인 효율화를 위해서 쓸모없는 몸을 만들어 내고 배제하는 식민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나의 운동이다. 그러나 어떻게 이 공고한 체제를 변혁할 수 있는가. 생태적 파국이라는 절망적인 상황과 소리 없는 죽음들을 끊임없이 양산해 내는 이 체제를 어떻게 멈춰 세울 수 있는가. 아픔은 차고 넘치지만, 허무주의가 팽배한 탈정치의 시대에서 어떻게 피억압자들의 집단적인 냉소를 집단적인 해방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기존의 체제는 성공했고, 변혁은 실패했다는 게 더욱 현실적으로 보이는 시대 속에서 어떻게 불가능해 보이는 혁명을 이뤄낼 것인가. 폭력이 없는 곳을 찾는 게 더 힘든 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두 피해와 가해의 위치가 교차하면서 폭력에 연루되어 있다. 폭력이 싫어서 안전하고 무결한 공동체주의에 빠진다고 해도 방관의 형태로 폭력에 가담하게 된다. 폭력의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자기 삶에서 폭력을 경험해 왔던 이들이 그 구조를 거부하고 나의 존엄한 삶을 되찾기 위해서 투쟁할 때 가능해진다. 누군가에게는 회복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성찰이 필요하며 회복과 성찰이 변혁적 실천으로 이어질 때 지금의 체제는 재구성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할 운동이 절실하다. 긴급행동이 무감각과 냉소 속에 숨겨진 폭력에 대한 경험과 드러나지 않았던 아픔에 손 내밀었던 정치적 듣기는 폭력적인 구조로부터 자신의 몫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성찰, 그리고 공동체의 성찰과 회복을 이야기했던 성폭력 사건의 대응 과정은 다르게 살고자 하는 이들이 구체제를 해체하고 폭력이 사라진 관계를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 두산 직접행동과 불복종 재판 투쟁, 삼척 직접행동은 나와 모두의 해방을 위해서 자본주의-식민주의적 착취 체제에 개입하고 균열을 내기 위한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CICC와 대안적인 법질서에 대한 논의는 자본 축적을 위해서 역사적인 파괴와 착취를 일삼아 온 자본의 법인격 해체와 같은 성찰을 강제하고 그들이 독점하고 있는 자원을 지구 공동체의 회복과 재구성을 위해서 활용하는 대안적 질서에 대한 상상이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합한 것을 생태공화국 운동이라고 한다면 이 운동은 나를 되찾고, 관계를 재구성하고, 경제/정치권력을 탈환하고, 더 큰 범주의 관계인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해방 운동이 될 것이다. 생태공화국 운동은 긴급행동을 넘어서 확장되어야 하고 집단적인 해방 운동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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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멕시코 치아파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
자주 이 글을 접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이해한 적은 없다. 그전까지 내가 해왔던 연대에 대한 접근은 기후정의와 체제전환 등의 당위적인 언어로 지금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방식이었다. 그러한 언어 속에서 나 자신도 배제되어 있었고, 나와 함께 하는 동료들과 다양한 피억압적 존재들을 동원해야 할 대상처럼 대했다. 그러한 당위를 허물고 나를 되찾는 것에서부터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지금, 타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한 번도 관계 맺고자 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타자를 이해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연대라는 것은 더더욱 어렵게 다가왔다. 이주 노동자 연대 과정에서 나의 언어적 올바름을 위해서 타자의 아픔을 관념적으로만 이용하고자 했다는 성찰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연대와 관계에 대한 나의 접근을 무너뜨렸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에 빠진 타자를 돕기 위한 연대는 타자를 불쌍한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며 오히려 나의 위치성과 타자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니까 연대는 나만을 위해서 하는 것도 상대방만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11월 1일 경희대 청운관 앞 잔디밭에서 열린 잔디밭 세미나에서 은빈이 “정치는 너와 내가 만나서 우리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라는 이야기했다.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그간의 혼란스러움이 조금은 정리되는 듯 했다. 연대는 자본주의-식민주의 체제 속에서 비국민이라는 이유로 착취당하는 구조를 재구성하려는 ‘당신의 해방’이 위계적인 문화 속에서 폭력에 대한 가해경험과 자본주의-식민주의적 체제 속에서 나의 삶을 박탈하는 그 구조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나의 해방’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을 때, 자본주의-식민주의 체제를 재구성하는 ‘우리의 해방’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 않을까. 우리의 해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해방을 이해해야 하고, 서로의 아픔에 절충적인 방식이 아닌 공동의 해방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치열하게 관계 맺는 투쟁이 연대이지 않을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해방을 위해서 타자를 이해하고 관계 맺고 싶다. 긴급행동이라는 현장에서부터 삼척에서, 포천에서, 화성의 공장식 축사에서, 그리고 이 땅에 아픔이 있는 모든 곳에서 타자들의 삶과 아픔을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치열하게 관계 맺어 우리의 해방을 향한 연대와 투쟁을 만들어 내고 싶다. 그랬을 때 비로소 어떤 존재도 배제되거나 억압되지 않는 해방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나의 과오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고 나의 삶도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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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해방을 위해서 당신을 이해하고 긴밀히 연결되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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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나와 세계의 끈질긴 얽힘을 통해서 쓰인 이야기이다. 내가 놓인 조건은 나를 지배적 질서대로 살아가게끔 수많은 밑 작업을 쳐 놓았다.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지배적 질서의 작동은 나에게 상처를 입혔고, 상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를, 지금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향하게 했다. 과오와 반성으로 쓰인 이야기는 이제껏 세계가 나를 규정지어 온 방식에 맞선 처절한 파괴의 몸 부림이다. 나에게 남은 상흔들은 내 삶을 되찾고자 하는 저항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 불행한 관계는 폭력의 논리로 나를 살게 하지만, 내가 그것을 변혁하고자 했을 때 그 관계는 반응한다. 잘못된 현실로부터의 도피는 상처에 대한 올바른 해답이 아니다. 그 무엇도 세계의 외부에서 나를 구원해 주지 않는다. 상처를 응시하고, 철옹성 같은 구조를 마주하고, 그것을 해체하고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 만이 나의 상처에 응답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내가 운동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내가 나의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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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행하는 나. 성희롱이 오가던 단톡방. 나는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고 남성문화의 일원이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남자 아이들 간의 관계 속에서 중심에 있었다. 운동을 좋아하고 잘했던 나는 이겨야 했고, 많은 경우에 이겼다.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주어지는 인정을 통해서 나는 나의 존재감을 느꼈다. 누군가를 짓밟아야지 내가 인정받는다는 것은 어려서부터 학습한 나의 존재 방식이었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게임이 끝난 뒤에도 나는 나를 위한 게임을 만들어야 했다.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를 인정해 줄 무리가 필요했고, 내가 짓밟아야 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 어린아이들이 무리와 타자를 나눴던 기준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상성/남성성이었다. 신체의 왜소함, 말의 어눌함, 행동의 느림 등 정상적인 남성성에 들지 않는 이들은 배제와 폭력의 대상이 되었고, 정상적인 남성성에 부합하는 이들은 나를 정상적인 존재로 인정해 줄 집단이 되었다. 저학년 때는 비남성적 존재를 향한 크고 작은 물리적, 정신적 학교 폭력이 일상적, 집단적으로 이뤄졌고, 상대적으로 나이가 들었을 때는 온라인 단톡방에서 같은 반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언어폭력이 이뤄졌다. 한 존재의 존엄을 파괴할 때 진짜 파괴되었던 것은 폭력적으로 관계 맺는 방법밖에 몰랐던 나 자신이었다. 내 과거는 죄책감과 자괴감 속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지만 죽지 못했고, 과거와 같은 방식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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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의 남성 문화는 미디어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학교 정책에 의해서 몰폰이 발각되며 중단되었다. 정확히 말해서 남성문화가 중단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백이 생겨났다.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대안학교에 다니던 나는 부모와 선생 등을 통해서 인권과 페미니즘 등을 접할 수 있었다. 내 행위에 대한 과오는 명확해졌고, 인권과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평등과 정의는 내 삶의 도피처가 되기에 충분했다. 나는 다시는 내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내 눈앞에 벌어지는 불의와 죽음을 끝내야 했다. 9학년 때 상급과정에 진학한 나는 페미니즘 동아리에 들어갔고, 비건이 되었으며, 대규모 기후행동에 참여했다. 올바름을 쫓던 나는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매체와 수업 등으로 접했고, 기후위기, 불평등, 동물착취 등의 뿌리에서 자본주의 체제와 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을 외치는 기후정의 운동을 만났다. 12학년 때는 학교에서 기후정의동아리를 만들고 대안학교 청소년들의 기후정의연대도 만들었다. 학교와 연대에서 기후정의를 위한 강연과 토론 등을 조직했고, 924 기후정의행진에서는 내가 영향을 받은 글의 저자들에게 호응을 얻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924 기후정의행진은 나에게 희망과 해방의 기운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그러나 행진이 끝나고 홀로 남았을 때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찾아왔다. 회현역 근처 벤치에서 줄담배를 30분 동안 피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분명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았지만 나는 혼자였다. 폭력적인 관계 속에서 가해자였던 나는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내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4년 동안의 삶과 운동은 사회적으로 옳았다고 쳐도, 분명한 것은 내게 남은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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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학년 졸업식 마침 시간이었다. 그 아이는 반 아이들을 향해 그 동안에 학교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로 너희들을 죽여버리고 싶었다고 하며 관계를 끊겠다고 말했다. 가해자 혹은 방관자였던 아이들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자기 잘못은 없는지 다가가서 물었다. 오만하게도 그 아이와 관계가 완만해졌다고 해서 관계가 회복된 줄 알았다. 가해자들은 자기 잘못을 모르고 학교는 방관하기만 했다. 나는 정의롭다고 착각하며 살아왔지만, 몇 년 전과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은 현실을 마주했다. 몇 달 후에는 페미니즘 동아리를 같이 했던 남자아이가 같은 반 친구를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질렀다. 그렇게도 벗어나려고 했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며 존재감을 느끼는 남성문화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의 탈폭력은 그저 폭력적인 현실로부터의 도피였을 뿐이었다. 그 무엇도 바꾸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내 삶에 대한 회의로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간의 올바름에 대한 추구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기만에 불과했다. 나는 나를 가해자로 만든 나 자신과 친구와 부모와 선생과 사회를 혐오하기만 했을 뿐이지 폭력적인 관계를 넘어서 폭력이 사라진 방식으로 관계 맺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자본주의를 뒤엎자는 구호는 공허했고, 당위에 동원해야 하는 대상이 있을 뿐 관계도 실체도 사라진 곳에서 나는 혼자였다. 다시 제자리에 놓인 나에게는 진정한 성찰이 필요했다. 과거의 행위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 내 행위가 작동했던 뿌리를 바꿔야 했다. 그때 비로소 긴급행동의 자기해방과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공동체적 회복이 나의 문제로 와닿았다. 지배질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경쟁과 폭력, 고립, 억압 등 구체적인 상처로 드러난다. 나는 나에게 드러난 남성성과 인정욕이라는 상처를 마주해야 했다. 긴급행동의 공동체적 회복은 폭력이 사라진 방식으로 관계 맺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었다. 미시적인 관계에서부터 폭력을 해체하고 공동체를 재구성한 힘과 동력은 관계에 대한 도피가 아닌 변혁된 관계를 맺으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정치적인 대안으로 다가왔다.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회복 과정에서 변혁적 정의에 대해서 외쳤듯이, 긴급행동이 해나가고자 하는 운동은 아래에서부터 관계를 재구성하는 동력으로 폭력을 재생산하는 체제에 대한 변혁을 향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해나고자 하는 운동이 나만의 대안을 넘어서 모두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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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내 운동은 폭력적인 방식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었던 관계와 조건을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폭력에 물들어 빼앗긴 존엄을 되찾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일상에 스며든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 폭력 등 위계적인 문화부터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해서 공동의 삶의 기반을 빼앗으며 경쟁과 빈곤, 부채의 더미로 내몰리게 하고, 생산에 적합한 이성과 합리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열등한 영역에 대한 수탈이 가능하게 하며, 극단적인 효율화를 위해서 쓸모없는 몸을 만들어 내고 배제하는 식민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나의 운동이다. 그러나 어떻게 이 공고한 체제를 변혁할 수 있는가. 생태적 파국이라는 절망적인 상황과 소리 없는 죽음들을 끊임없이 양산해 내는 이 체제를 어떻게 멈춰 세울 수 있는가. 아픔은 차고 넘치지만, 허무주의가 팽배한 탈정치의 시대에서 어떻게 피억압자들의 집단적인 냉소를 집단적인 해방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기존의 체제는 성공했고, 변혁은 실패했다는 게 더욱 현실적으로 보이는 시대 속에서 어떻게 불가능해 보이는 혁명을 이뤄낼 것인가. 폭력이 없는 곳을 찾는 게 더 힘든 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두 피해와 가해의 위치가 교차하면서 폭력에 연루되어 있다. 폭력이 싫어서 안전하고 무결한 공동체주의에 빠진다고 해도 방관의 형태로 폭력에 가담하게 된다. 폭력의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자기 삶에서 폭력을 경험해 왔던 이들이 그 구조를 거부하고 나의 존엄한 삶을 되찾기 위해서 투쟁할 때 가능해진다. 누군가에게는 회복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성찰이 필요하며 회복과 성찰이 변혁적 실천으로 이어질 때 지금의 체제는 재구성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할 운동이 절실하다. 긴급행동이 무감각과 냉소 속에 숨겨진 폭력에 대한 경험과 드러나지 않았던 아픔에 손 내밀었던 정치적 듣기는 폭력적인 구조로부터 자신의 몫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성찰, 그리고 공동체의 성찰과 회복을 이야기했던 성폭력 사건의 대응 과정은 다르게 살고자 하는 이들이 구체제를 해체하고 폭력이 사라진 관계를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 두산 직접행동과 불복종 재판 투쟁, 삼척 직접행동은 나와 모두의 해방을 위해서 자본주의-식민주의적 착취 체제에 개입하고 균열을 내기 위한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CICC와 대안적인 법질서에 대한 논의는 자본 축적을 위해서 역사적인 파괴와 착취를 일삼아 온 자본의 법인격 해체와 같은 성찰을 강제하고 그들이 독점하고 있는 자원을 지구 공동체의 회복과 재구성을 위해서 활용하는 대안적 질서에 대한 상상이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합한 것을 생태공화국 운동이라고 한다면 이 운동은 나를 되찾고, 관계를 재구성하고, 경제/정치권력을 탈환하고, 더 큰 범주의 관계인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해방 운동이 될 것이다. 생태공화국 운동은 긴급행동을 넘어서 확장되어야 하고 집단적인 해방 운동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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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이 글을 접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이해한 적은 없다. 그전까지 내가 해왔던 연대에 대한 접근은 기후정의와 체제전환 등의 당위적인 언어로 지금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방식이었다. 그러한 언어 속에서 나 자신도 배제되어 있었고, 나와 함께 하는 동료들과 다양한 피억압적 존재들을 동원해야 할 대상처럼 대했다. 그러한 당위를 허물고 나를 되찾는 것에서부터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지금, 타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한 번도 관계 맺고자 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타자를 이해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연대라는 것은 더더욱 어렵게 다가왔다. 이주 노동자 연대 과정에서 나의 언어적 올바름을 위해서 타자의 아픔을 관념적으로만 이용하고자 했다는 성찰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연대와 관계에 대한 나의 접근을 무너뜨렸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에 빠진 타자를 돕기 위한 연대는 타자를 불쌍한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며 오히려 나의 위치성과 타자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니까 연대는 나만을 위해서 하는 것도 상대방만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11월 1일 경희대 청운관 앞 잔디밭에서 열린 잔디밭 세미나에서 은빈이 “정치는 너와 내가 만나서 우리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라는 이야기했다.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그간의 혼란스러움이 조금은 정리되는 듯 했다. 연대는 자본주의-식민주의 체제 속에서 비국민이라는 이유로 착취당하는 구조를 재구성하려는 ‘당신의 해방’이 위계적인 문화 속에서 폭력에 대한 가해경험과 자본주의-식민주의적 체제 속에서 나의 삶을 박탈하는 그 구조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나의 해방’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을 때, 자본주의-식민주의 체제를 재구성하는 ‘우리의 해방’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 않을까. 우리의 해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해방을 이해해야 하고, 서로의 아픔에 절충적인 방식이 아닌 공동의 해방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치열하게 관계 맺는 투쟁이 연대이지 않을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해방을 위해서 타자를 이해하고 관계 맺고 싶다. 긴급행동이라는 현장에서부터 삼척에서, 포천에서, 화성의 공장식 축사에서, 그리고 이 땅에 아픔이 있는 모든 곳에서 타자들의 삶과 아픔을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치열하게 관계 맺어 우리의 해방을 향한 연대와 투쟁을 만들어 내고 싶다. 그랬을 때 비로소 어떤 존재도 배제되거나 억압되지 않는 해방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나의 과오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고 나의 삶도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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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해방을 위해서 당신을 이해하고 긴밀히 연결되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