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인터뷰 답변을 바탕으로 인터뷰어가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수원지법 앞에서 마지막 기자회견을 한 지도 어느덧 한 주가 훌쩍 지났네요! 선고 끝나고 어떻게 지내셨어요?
청연: 저는 가끔 광장 나가고, 생태공화주의를 고민하고, 얼마 전엔 삼척 유채꽃 가요제 준비하려다 접고 ㅎㅎ… 공부하고 밀린 글 끄적이며 지내요~ 어제는 고운(고등학생운동)사 북토크 다녀왔고, 오늘은 대선 관련 외부 스터디 첫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은빈: 저는 재판 마치고 가족들과 서울 여의도로 벚꽃 구경을 다녀왔고요. 그 다음 날 바로 삼척으로 돌아왔어요! 오늘은 오전에 수아님과 간단히 방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널었어요. <바로 지금 여기> 시사회 후속 답사 참여자 분들이 거점 공간에 하룻밤 묵으셨거든요.
#재판 얘기
그래도 나름 재판 후일담이니, 재판 얘기부터 해 볼게요.
2021년 2월 분당두산타워 앞의 두산 로고 조형물에 초록색 수성 스프레이를 뿌리고 세척했던 기후불복종 행동 후, 4년의 항소와 상고 그리고 파기환송심 끝에 원심의 벌금 500만원 판결을 뒤집고 벌금 반절 감액 및 집행유예 1년이 최종 선고되었어요. 은빈과 청연 모두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고요.
이미 기자회견문과 성명을 통해 다 말했을 수도 있지만, 재판장에서 선고를 들은 직후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저는 받아적느라 정신없던 와중에도 ‘물 반 컵 같은 선고다’ 라는 생각을 했네요.
청연: 물 반 컵 같은 선고! 딱 적당한 표현이네요. 저는 ‘벌금 집행유예도 있나! 그렇다면 즐겁다!’ 정도의 생각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반 컵의 물 얘기처럼 긍정적으로 볼 만한 희망도 있고, 현실적인 한계를 직시하고 ‘그럼 다음 스텝으로는 뭘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판결이기도 했네요. 사실상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현행법의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유죄 판단을 깨지 못했고, 행동의 직접 원인이었던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는 끝내 완공되어 가동을 앞두고 있으니까요.
은빈: ‘해 보지도 않고 섣불리 낙담하지 말자.’ 예측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겸손하고, 정직하게 도전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우리의 행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저도 재판이 끝나면 불복종의 대가로 벌금을 안 낼 수는 없을 거라고 혼자 생각했고요.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의미와 과정에 집중하며 꾸준히 일하다 보면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성큼 다가올 거라고 믿게 되었어요.
그리고 청연님! 제 기억이 맞다면 이번 최종선고 때 청연이 “즐겁다!” 피켓을 꽤 좋아했고, 텔레그램 단체방에도 이 표현으로 소회를 남겼죠 ㅎㅎ 전에 대법원 선고 때 은빈이 입고 온 티셔츠에서 착안했을 텐데, 청연에게는 이 재판의 마무리가 어떤 점에서 특히 즐거웠나요?


청연: ㅎㅎ 사실 은빈의 티셔츠 문구를 피켓으로 또 만든 게 재밌었고, 은빈 아버지께서 피켓 색칠하신 것도 웃겨서 기억에 남았네요. 재판 결과에서 우리의 기후불복종 투쟁이 일정 부분 인정받은 듯해 즐거운 것도 있었지만, 끝나고 우리끼리 빙 둘러서서 이야기 나누고, 연대발언에 노래도 불렀던 게 정말 즐거웠어요.
4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그 사이 기후위기를 인식하는 사회의 분위기도 바뀌었고, 그에 따라 재판의 흐름도 바뀌었던 것 같아요. 어떤가요? 법 질서와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감지하나요? 재판 대응 활동을 하는 동안 어떤 지점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어떤 면에서 한계를 보았나요?
은빈: 법률 조항을 만들고, 집행하고, 해석하는 모든 활동이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어요. 현실에 반응하고 개입하는 사람들이 정치에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기후위기 시대에 성찰과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드는 문화와 언어, 생활하는 방식, 관계맺는 방식을 통해 우리 사회를 변혁해 나가고 싶어요.
청연: 예전에 어떤 분이 “법조계 내지 사법부는 보수적이다, 제일 늦게 바뀐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제 느낌에 최근 몇 년간 사법부 선고 및 법조계의 변화가 생각보다 굉장히 빨랐던 것 같아요. 물론 기존의 판례나 법 체계를 뒤집을 만큼 전향적인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저희 두산 사건 이외에도 최근 청소년 기후헌법소송 등 의미 있는 선고들이 더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바꾸어 말하면, 말씀드렸듯 현행 법 체계나 사회적 관습을 뒤집을 만한 파격적인 선고는 아직 오지 않았고, 더 기다리거나 불러와야 한다는 사실은 한계겠네요.
재판 과정은 기나긴 기록의 시간이기도 하죠. 이미 워낙 많은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만약 한 장면을 본인이 직접 찍어 남길 수 있다면 어떤 장면일지 서술해 주실 수 있나요?
청연: 저는 이상하게 2심 수원지방법원 때 재판 전 기자회견과, 법원 일정 마치고 참석자들끼리 뒷마당 같은 데 모여서 대화를 나눈 풍경이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봄 아니면 초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60+기후행동 박병상님 연대발언도 참 좋았고, 은빈의 ‘가리워진 길’ 노래 공연도 좋았고, 붕앙팀에서 같이 열심히 활동했던 다연님의 이야기도 참 좋았습니다. (일종의 ‘이어달리기’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아, “뒤에 수백 명의 수녀님들이 같이 기도하고 있다”는 수녀님의 말씀도 든든하고 큰 힘이 됐네요!
은빈: 만약 남길 수 있다면 방청 연대 오신 분들과 재판부 앞에서 최후진술을 했던 순간을 남기고 싶어요. (법정 내부는 촬영할 수 없어서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거든요.) 2023년 봄에 수원지방법원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최후진술문을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있어요. 준비한 말을 다 하고 나니 후련한 마음으로 법정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법이 우리를 통제하고 규정짓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행동이 법과 규범, 상식을 재구성할 실마리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 저는 이웃나라에 죽음을 수출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지구 생태계의 편에 서는 법,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이들의 편에 서는 법 질서가 작동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형사재판 2심 은빈 최후진술문 중)
#돌아보기: 공동체와 개인
기자회견 사진을 보면 함께하는 멤버들이 매번 달라져요 ㅎㅎ 보고서 <법정에 선 기후활동가들: 붕앙재판 여정기>와 재판 종결 성명에서도 ‘이어달리기’라는 표현이 자주 나왔는데, 긴급행동이라는 공동체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했는지 눈에 보이던가요?
청연: 활동 초반에는 정말 언론보도에서 기후의 ‘기’ 자도 다루지 않았던, 관심 없던 시기였거든요. 지금과도 느낌이 많이 다르죠. 그만큼 기후위기도 빠르게 극심해졌다는 점에서 꼭 좋은 변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은빈: 초창기는 기후·에너지·정치 의제에 대해 전공-배경 지식이 많거나 적극적인 소수가 끌고 가는 ‘하드캐리’ 방식에 가까웠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특정 지식이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보다, 자기 삶에서 겪은 아픔이나 취약함을 내어 주는 사람들에게 더 힘이 실린다고 생각해요.

(2024년 12월 공유공간 공가에서, 밥상과 이야기를 나눈 ‘따땃, 뜨뜻’ 모임 중)
청연: ‘행동해야 한다’는, 기후위기를 알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처음의 강박(?)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돌봄과 공동체에 대한 고민까지 추가된 느낌이에요. 어떤 한 방향으로 변해왔다기보다는 둘 사이 어디쯤엔가에서 둘 모두를 고려하려는 노력과 시도가 쌓이지 않았나 싶어요.
은빈: 고유하고 다양한 존재들이 각자가 원하는 방식과 속도대로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 같아요. 학생, 직장인처럼 일상 생활과 현업의 비중이 높은 멤버들이 많아서 (외부에서 봤을 때는) 다소 느슨하게 운영되고 있지만, 차츰 생활 기반을 공동으로 마련해서 우리의 ‘생태정치공동체’가 더욱 번영하면 좋겠어요.
사담이지만, 제 경우 재판 맨 끝자락에 합류한 멤버이다보니 ‘내가 이 긴 여정의 마지막을, 이전 멤버들의 소망과 희망까지 담아 잘 마무리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더라고요.
청연: 저는 거의 맨 앞부터 있는 멤버이지만.. 이전 멤버들의 소망과 희망까지 담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ㅎㅎ 그럴 수도 없고! 이어달리기도 내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만 잘 하면 되는 것처럼?
공동체도 그렇지만, 은빈과 청연이라는 사람에게도 그 4년간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던 대학생 은빈은 이제 대학 졸업을 거부하고 삼척에서 머물고 있어요. 학교를 갓 졸업했던 21년의 청연은 녹색당 활동을 하고, 최근엔 사무처 일도 짧게 하면서 어느덧 25년까지 왔고요. 폭풍같은(?) 2020년대 전반부를 거치며 여러분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청연: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에 대해 가까이, 혹은 거리를 두고 들여다 보면서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이렇다할 변화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좀 더 차분해졌다? ㅎㅎ 취향은 더 협소해진 것 같기도 하고… 잘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은빈: 저는 그때 헛똑똑이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어요. 평화, 정의, 사랑을 관념적으로 추구했어요. 사람보다 책을 좋아하고, 나의 존재를 드러내거나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고 표현하기를 꺼렸어요. 청소년 시기 학교폭력을 주도하고 목격한 이후, 가해 트라우마를 혼자 견디는 게 내 행동에 책임지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긴급행동을 통해 취약함을 드러내고, 거기서부터 시작해 우리 사회와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서투를지라도 구체적인 관계, 사건, 장소들이 나를 형성하고 있어요. 그 모든 것들이 저를 지탱하고, 저는 그것들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청연과 은빈의 오늘
은빈은 지난 1월, 삼척에 전입신고 후 현재 삼척에 머무르고 있죠. 수아 활동가와 함께 살며 밥도 잘 지어먹고, 연책방에서 지역의 이야기 발굴 및 아카이빙 활동도 하고, 동해삼척기후위기비상행동 분들과 함께 읽기모임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바쁘다 바빠 삼척 생활! 삼척살이의 과정에서 은빈 안팎으로(주변 환경이든, 은빈의 마음과 생각이든) 달라진 점이 있나요?
은빈: 체력 단련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서울에서 바쁘게 지낼 때는 시간을 쪼개 몸을 돌보는 것이 사치로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게으른 변명이었겠지만… ㅎㅎ) 삼척 생활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정한 첫 번째 원칙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전에 헬스장을 가는 것’이에요. 운동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지낼 수 있고, 제 몸과 컨디션에 집중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노래도 들을 수 있고요.
청연은 정말 손꼽히는 다독가이자 다관람가인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청연과 이야기 나누며 여러 책과 작가를 소개받았던 터라 굉장히 즐겁고 감사해요. 덕분에 윤은성 시인도 알게 되었고, 잊고 지냈던 브레히트를 재발견했더랬죠. 그리 많이 읽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리 많이 읽고 볼 수 있나’ 하는 놀라움과 존경심이 자주 드는데, 다독과 다관람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반대로, 지금까지 쌓아온 작품들이 예상치 못하게 힘을 발휘한 때도 있었나요?
청연: 사실 별로 많이 보는 편은 아닌데... 보통은 호기심, 그리고 새롭고 재미있고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 같아요. 그렇게 지금까지 제가 보고 들은 것들이 저라는 존재를 만들어 오고 있고요 ㅎㅎ 음식처럼?!
활동할 때 은빈을 보면 작은 노트에 무언가 끊임없이 적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 노트에는 무슨 얘기가 적혀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언제부터, 어떤 마음으로 노트 기록을 시작했는지 기억나나요? 무엇을 노트에 주로 적나요?
은빈: 멤버들과 함께 회의하거나 대화할 때 간직하고 싶은 문장들이 있어요. 그리고 중요한 아이디어나 해야 할 일이 갑자기 떠오를 때도 있어요. 전자기기에 메모하거나 녹음해 보기도 했는데, 복기하기도 어렵고 현장에서 집중이 흐트러지더라고요. 특히 일대일 대화일 때는 더욱이요. 그런데 손바닥만 한 수첩을 구해서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서 써 보니 너무 좋더라고요.
기록할 때마다 날짜, 시간, 장소를 꼭 써요. 그러면 나중에 복기할 때에도 그 순간이 금방 떠올라요. 이전에 한 멤버가 회의에서 했던 말을 적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때 멤버들이 ‘은빈님은 그런 말도 다 기억하시네요.’ 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응답할 수 있도록 마음에 남는 말을 들으면 가급적 기록해 두려고 해요.
#청연과 은빈의 내일
ⓒ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 “국내 첫 기후불복종 재판 마무리...'녹색 스프레이'가 남긴 것” (2025. 04 08)
이전에 연말보고서를 작성할 때 은빈의 소개글 중 ‘한국전쟁 종전이라는 꿈을 갖고 산다’는 부분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어요. 그 꿈, 여전히 유효한지요? 은빈이 만들어 가고 있는 꿈은 모양새가 정말 다양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또 슬며시 올라온 새로운 모양의 꿈이 있나요?
은빈: 네, 여전히 유효해요. 삼척으로 이주해서 품게 된 꿈이 있는데, 삼척블루파워 공사 현장이 있는 상맹방리에 마을 햇빛발전소 뿐만 아니라 ‘승공마을 역사관’을 세우고 싶어요. 승공마을은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 박정희 정부가 화전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형성된 마을이에요. 맹방이 이런 역사를 품고 있는 줄은 저도 잘 몰랐어요. ‘승공’은 원래 공산주의를 물리쳐 이기자는 의미인데, 공동체 정신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는 뜻으로 의미를 전유하고 싶어요. 그렇게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단 국가에서 터전을 빼앗기고 강제 이주당한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고 싶어요.
삼척 주민들뿐만 아니라, 탈북민들이 긴급행동과 함께 활동하며 남북의 구체제를 타파하는 생태공화국 운동을 일구어 나가면 좋겠다는 소망도 있어요. 전 지구적으로 위기가 심해질수록 우리는 낯선 사람들과 더 많이 부대끼고 협동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도 환대와 공생의 지혜를 배우고 실천하며 살고 싶어요.
청연은 전에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라는 말을 한 적 있었죠. 청연에게도 최근 올라온, ‘그냥은 넘어갈 수 없는’ 꿈이 있나요?
청연: 제가 그런 말을 했군요! 요즘 저는 ‘생태공화주의’를 찾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으니 민주주의는 비교적 익숙하게 여기지만 공화주의는 거의 못 들어 봤거나 잘 알지 못하잖아요? 저도 알게 된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개인과 공동체를 모두 중시하고 공동의 가치와 책임을 말하는 공화주의라면 기후위기 대응에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마지막으로, 올 6월 대선을 바라보며 아무거나 한마디!
은빈: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체제의 원동력, 에너지 문제는 국가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로 연루되어 있어요. 삼척블루파워 석탄화력발전소도 국가가 인허가를 내주었기 때문에 민간 발전사가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주민들의 주도로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와 부지 환수를 실현하고, 좋은 삶과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생태정치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선을 앞두고 탈송전탑-탈핵-탈석탄 순례(4/25~5/15)가 진행 중입니다. 삼척에서 출발해 서울로 도착하는 루트인데, 대선 후보들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촉구하고자 동해삼척기후위기비상행동에서 시작한 순례에요. 저는 1일차 삼척원전백지화기념탑에서 삼척시청까지 걷는 구간을 동행했어요. 5월 15일에는 서울 이문동에서 광화문까지 걷고 기자회견을 진행합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함께하면 좋겠어요!
청연: 다들 한 번쯤 기후와 일상을 연결지어 고민해 볼 수 있는 선거였으면 합니다. 김공룡 파이팅!
*서면 인터뷰 답변을 바탕으로 인터뷰어가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수원지법 앞에서 마지막 기자회견을 한 지도 어느덧 한 주가 훌쩍 지났네요! 선고 끝나고 어떻게 지내셨어요?
청연: 저는 가끔 광장 나가고, 생태공화주의를 고민하고, 얼마 전엔 삼척 유채꽃 가요제 준비하려다 접고 ㅎㅎ… 공부하고 밀린 글 끄적이며 지내요~ 어제는 고운(고등학생운동)사 북토크 다녀왔고, 오늘은 대선 관련 외부 스터디 첫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은빈: 저는 재판 마치고 가족들과 서울 여의도로 벚꽃 구경을 다녀왔고요. 그 다음 날 바로 삼척으로 돌아왔어요! 오늘은 오전에 수아님과 간단히 방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널었어요. <바로 지금 여기> 시사회 후속 답사 참여자 분들이 거점 공간에 하룻밤 묵으셨거든요.
#재판 얘기
그래도 나름 재판 후일담이니, 재판 얘기부터 해 볼게요.
2021년 2월 분당두산타워 앞의 두산 로고 조형물에 초록색 수성 스프레이를 뿌리고 세척했던 기후불복종 행동 후, 4년의 항소와 상고 그리고 파기환송심 끝에 원심의 벌금 500만원 판결을 뒤집고 벌금 반절 감액 및 집행유예 1년이 최종 선고되었어요. 은빈과 청연 모두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고요.
이미 기자회견문과 성명을 통해 다 말했을 수도 있지만, 재판장에서 선고를 들은 직후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저는 받아적느라 정신없던 와중에도 ‘물 반 컵 같은 선고다’ 라는 생각을 했네요.
청연: 물 반 컵 같은 선고! 딱 적당한 표현이네요. 저는 ‘벌금 집행유예도 있나! 그렇다면 즐겁다!’ 정도의 생각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반 컵의 물 얘기처럼 긍정적으로 볼 만한 희망도 있고, 현실적인 한계를 직시하고 ‘그럼 다음 스텝으로는 뭘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판결이기도 했네요. 사실상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현행법의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유죄 판단을 깨지 못했고, 행동의 직접 원인이었던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는 끝내 완공되어 가동을 앞두고 있으니까요.
은빈: ‘해 보지도 않고 섣불리 낙담하지 말자.’ 예측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겸손하고, 정직하게 도전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우리의 행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저도 재판이 끝나면 불복종의 대가로 벌금을 안 낼 수는 없을 거라고 혼자 생각했고요.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의미와 과정에 집중하며 꾸준히 일하다 보면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성큼 다가올 거라고 믿게 되었어요.
그리고 청연님! 제 기억이 맞다면 이번 최종선고 때 청연이 “즐겁다!” 피켓을 꽤 좋아했고, 텔레그램 단체방에도 이 표현으로 소회를 남겼죠 ㅎㅎ 전에 대법원 선고 때 은빈이 입고 온 티셔츠에서 착안했을 텐데, 청연에게는 이 재판의 마무리가 어떤 점에서 특히 즐거웠나요?
청연: ㅎㅎ 사실 은빈의 티셔츠 문구를 피켓으로 또 만든 게 재밌었고, 은빈 아버지께서 피켓 색칠하신 것도 웃겨서 기억에 남았네요. 재판 결과에서 우리의 기후불복종 투쟁이 일정 부분 인정받은 듯해 즐거운 것도 있었지만, 끝나고 우리끼리 빙 둘러서서 이야기 나누고, 연대발언에 노래도 불렀던 게 정말 즐거웠어요.
4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그 사이 기후위기를 인식하는 사회의 분위기도 바뀌었고, 그에 따라 재판의 흐름도 바뀌었던 것 같아요. 어떤가요? 법 질서와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감지하나요? 재판 대응 활동을 하는 동안 어떤 지점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어떤 면에서 한계를 보았나요?
은빈: 법률 조항을 만들고, 집행하고, 해석하는 모든 활동이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어요. 현실에 반응하고 개입하는 사람들이 정치에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기후위기 시대에 성찰과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드는 문화와 언어, 생활하는 방식, 관계맺는 방식을 통해 우리 사회를 변혁해 나가고 싶어요.
청연: 예전에 어떤 분이 “법조계 내지 사법부는 보수적이다, 제일 늦게 바뀐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제 느낌에 최근 몇 년간 사법부 선고 및 법조계의 변화가 생각보다 굉장히 빨랐던 것 같아요. 물론 기존의 판례나 법 체계를 뒤집을 만큼 전향적인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저희 두산 사건 이외에도 최근 청소년 기후헌법소송 등 의미 있는 선고들이 더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바꾸어 말하면, 말씀드렸듯 현행 법 체계나 사회적 관습을 뒤집을 만한 파격적인 선고는 아직 오지 않았고, 더 기다리거나 불러와야 한다는 사실은 한계겠네요.
재판 과정은 기나긴 기록의 시간이기도 하죠. 이미 워낙 많은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만약 한 장면을 본인이 직접 찍어 남길 수 있다면 어떤 장면일지 서술해 주실 수 있나요?
청연: 저는 이상하게 2심 수원지방법원 때 재판 전 기자회견과, 법원 일정 마치고 참석자들끼리 뒷마당 같은 데 모여서 대화를 나눈 풍경이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봄 아니면 초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60+기후행동 박병상님 연대발언도 참 좋았고, 은빈의 ‘가리워진 길’ 노래 공연도 좋았고, 붕앙팀에서 같이 열심히 활동했던 다연님의 이야기도 참 좋았습니다. (일종의 ‘이어달리기’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아, “뒤에 수백 명의 수녀님들이 같이 기도하고 있다”는 수녀님의 말씀도 든든하고 큰 힘이 됐네요!
은빈: 만약 남길 수 있다면 방청 연대 오신 분들과 재판부 앞에서 최후진술을 했던 순간을 남기고 싶어요. (법정 내부는 촬영할 수 없어서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거든요.) 2023년 봄에 수원지방법원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최후진술문을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있어요. 준비한 말을 다 하고 나니 후련한 마음으로 법정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법이 우리를 통제하고 규정짓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행동이 법과 규범, 상식을 재구성할 실마리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 저는 이웃나라에 죽음을 수출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지구 생태계의 편에 서는 법,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이들의 편에 서는 법 질서가 작동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형사재판 2심 은빈 최후진술문 중)
#돌아보기: 공동체와 개인
기자회견 사진을 보면 함께하는 멤버들이 매번 달라져요 ㅎㅎ 보고서 <법정에 선 기후활동가들: 붕앙재판 여정기>와 재판 종결 성명에서도 ‘이어달리기’라는 표현이 자주 나왔는데, 긴급행동이라는 공동체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했는지 눈에 보이던가요?
청연: 활동 초반에는 정말 언론보도에서 기후의 ‘기’ 자도 다루지 않았던, 관심 없던 시기였거든요. 지금과도 느낌이 많이 다르죠. 그만큼 기후위기도 빠르게 극심해졌다는 점에서 꼭 좋은 변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은빈: 초창기는 기후·에너지·정치 의제에 대해 전공-배경 지식이 많거나 적극적인 소수가 끌고 가는 ‘하드캐리’ 방식에 가까웠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특정 지식이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보다, 자기 삶에서 겪은 아픔이나 취약함을 내어 주는 사람들에게 더 힘이 실린다고 생각해요.
(2024년 12월 공유공간 공가에서, 밥상과 이야기를 나눈 ‘따땃, 뜨뜻’ 모임 중)
청연: ‘행동해야 한다’는, 기후위기를 알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처음의 강박(?)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돌봄과 공동체에 대한 고민까지 추가된 느낌이에요. 어떤 한 방향으로 변해왔다기보다는 둘 사이 어디쯤엔가에서 둘 모두를 고려하려는 노력과 시도가 쌓이지 않았나 싶어요.
은빈: 고유하고 다양한 존재들이 각자가 원하는 방식과 속도대로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 같아요. 학생, 직장인처럼 일상 생활과 현업의 비중이 높은 멤버들이 많아서 (외부에서 봤을 때는) 다소 느슨하게 운영되고 있지만, 차츰 생활 기반을 공동으로 마련해서 우리의 ‘생태정치공동체’가 더욱 번영하면 좋겠어요.
사담이지만, 제 경우 재판 맨 끝자락에 합류한 멤버이다보니 ‘내가 이 긴 여정의 마지막을, 이전 멤버들의 소망과 희망까지 담아 잘 마무리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더라고요.
청연: 저는 거의 맨 앞부터 있는 멤버이지만.. 이전 멤버들의 소망과 희망까지 담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ㅎㅎ 그럴 수도 없고! 이어달리기도 내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만 잘 하면 되는 것처럼?
공동체도 그렇지만, 은빈과 청연이라는 사람에게도 그 4년간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던 대학생 은빈은 이제 대학 졸업을 거부하고 삼척에서 머물고 있어요. 학교를 갓 졸업했던 21년의 청연은 녹색당 활동을 하고, 최근엔 사무처 일도 짧게 하면서 어느덧 25년까지 왔고요. 폭풍같은(?) 2020년대 전반부를 거치며 여러분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청연: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에 대해 가까이, 혹은 거리를 두고 들여다 보면서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이렇다할 변화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좀 더 차분해졌다? ㅎㅎ 취향은 더 협소해진 것 같기도 하고… 잘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은빈: 저는 그때 헛똑똑이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어요. 평화, 정의, 사랑을 관념적으로 추구했어요. 사람보다 책을 좋아하고, 나의 존재를 드러내거나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고 표현하기를 꺼렸어요. 청소년 시기 학교폭력을 주도하고 목격한 이후, 가해 트라우마를 혼자 견디는 게 내 행동에 책임지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긴급행동을 통해 취약함을 드러내고, 거기서부터 시작해 우리 사회와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서투를지라도 구체적인 관계, 사건, 장소들이 나를 형성하고 있어요. 그 모든 것들이 저를 지탱하고, 저는 그것들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청연과 은빈의 오늘
은빈은 지난 1월, 삼척에 전입신고 후 현재 삼척에 머무르고 있죠. 수아 활동가와 함께 살며 밥도 잘 지어먹고, 연책방에서 지역의 이야기 발굴 및 아카이빙 활동도 하고, 동해삼척기후위기비상행동 분들과 함께 읽기모임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바쁘다 바빠 삼척 생활! 삼척살이의 과정에서 은빈 안팎으로(주변 환경이든, 은빈의 마음과 생각이든) 달라진 점이 있나요?
은빈: 체력 단련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서울에서 바쁘게 지낼 때는 시간을 쪼개 몸을 돌보는 것이 사치로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게으른 변명이었겠지만… ㅎㅎ) 삼척 생활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정한 첫 번째 원칙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전에 헬스장을 가는 것’이에요. 운동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지낼 수 있고, 제 몸과 컨디션에 집중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노래도 들을 수 있고요.
청연은 정말 손꼽히는 다독가이자 다관람가인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청연과 이야기 나누며 여러 책과 작가를 소개받았던 터라 굉장히 즐겁고 감사해요. 덕분에 윤은성 시인도 알게 되었고, 잊고 지냈던 브레히트를 재발견했더랬죠. 그리 많이 읽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리 많이 읽고 볼 수 있나’ 하는 놀라움과 존경심이 자주 드는데, 다독과 다관람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반대로, 지금까지 쌓아온 작품들이 예상치 못하게 힘을 발휘한 때도 있었나요?
청연: 사실 별로 많이 보는 편은 아닌데... 보통은 호기심, 그리고 새롭고 재미있고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 같아요. 그렇게 지금까지 제가 보고 들은 것들이 저라는 존재를 만들어 오고 있고요 ㅎㅎ 음식처럼?!
활동할 때 은빈을 보면 작은 노트에 무언가 끊임없이 적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 노트에는 무슨 얘기가 적혀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언제부터, 어떤 마음으로 노트 기록을 시작했는지 기억나나요? 무엇을 노트에 주로 적나요?
은빈: 멤버들과 함께 회의하거나 대화할 때 간직하고 싶은 문장들이 있어요. 그리고 중요한 아이디어나 해야 할 일이 갑자기 떠오를 때도 있어요. 전자기기에 메모하거나 녹음해 보기도 했는데, 복기하기도 어렵고 현장에서 집중이 흐트러지더라고요. 특히 일대일 대화일 때는 더욱이요. 그런데 손바닥만 한 수첩을 구해서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서 써 보니 너무 좋더라고요.
기록할 때마다 날짜, 시간, 장소를 꼭 써요. 그러면 나중에 복기할 때에도 그 순간이 금방 떠올라요. 이전에 한 멤버가 회의에서 했던 말을 적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때 멤버들이 ‘은빈님은 그런 말도 다 기억하시네요.’ 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응답할 수 있도록 마음에 남는 말을 들으면 가급적 기록해 두려고 해요.
#청연과 은빈의 내일
이전에 연말보고서를 작성할 때 은빈의 소개글 중 ‘한국전쟁 종전이라는 꿈을 갖고 산다’는 부분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어요. 그 꿈, 여전히 유효한지요? 은빈이 만들어 가고 있는 꿈은 모양새가 정말 다양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또 슬며시 올라온 새로운 모양의 꿈이 있나요?
은빈: 네, 여전히 유효해요. 삼척으로 이주해서 품게 된 꿈이 있는데, 삼척블루파워 공사 현장이 있는 상맹방리에 마을 햇빛발전소 뿐만 아니라 ‘승공마을 역사관’을 세우고 싶어요. 승공마을은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 박정희 정부가 화전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형성된 마을이에요. 맹방이 이런 역사를 품고 있는 줄은 저도 잘 몰랐어요. ‘승공’은 원래 공산주의를 물리쳐 이기자는 의미인데, 공동체 정신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는 뜻으로 의미를 전유하고 싶어요. 그렇게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단 국가에서 터전을 빼앗기고 강제 이주당한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고 싶어요.
삼척 주민들뿐만 아니라, 탈북민들이 긴급행동과 함께 활동하며 남북의 구체제를 타파하는 생태공화국 운동을 일구어 나가면 좋겠다는 소망도 있어요. 전 지구적으로 위기가 심해질수록 우리는 낯선 사람들과 더 많이 부대끼고 협동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도 환대와 공생의 지혜를 배우고 실천하며 살고 싶어요.
청연은 전에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라는 말을 한 적 있었죠. 청연에게도 최근 올라온, ‘그냥은 넘어갈 수 없는’ 꿈이 있나요?
청연: 제가 그런 말을 했군요! 요즘 저는 ‘생태공화주의’를 찾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으니 민주주의는 비교적 익숙하게 여기지만 공화주의는 거의 못 들어 봤거나 잘 알지 못하잖아요? 저도 알게 된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개인과 공동체를 모두 중시하고 공동의 가치와 책임을 말하는 공화주의라면 기후위기 대응에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마지막으로, 올 6월 대선을 바라보며 아무거나 한마디!
은빈: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체제의 원동력, 에너지 문제는 국가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로 연루되어 있어요. 삼척블루파워 석탄화력발전소도 국가가 인허가를 내주었기 때문에 민간 발전사가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주민들의 주도로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와 부지 환수를 실현하고, 좋은 삶과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생태정치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선을 앞두고 탈송전탑-탈핵-탈석탄 순례(4/25~5/15)가 진행 중입니다. 삼척에서 출발해 서울로 도착하는 루트인데, 대선 후보들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촉구하고자 동해삼척기후위기비상행동에서 시작한 순례에요. 저는 1일차 삼척원전백지화기념탑에서 삼척시청까지 걷는 구간을 동행했어요. 5월 15일에는 서울 이문동에서 광화문까지 걷고 기자회견을 진행합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함께하면 좋겠어요!
청연: 다들 한 번쯤 기후와 일상을 연결지어 고민해 볼 수 있는 선거였으면 합니다. 김공룡 파이팅!